개구리 먹기? 개구리 손질하기
“어려운 일을 먼저 해라”는 격언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었다. 시작이 안 되는 진짜 이유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막연해서다.
시작이 막힌 사람에게 필요한 건 결심이 아니라 손질이다. 개구리를 먹기 전에 도마에 올려 토막부터 내야 한다.
진짜 적은 개구리가 아니라 안개다
대부분은 미루기를 의지력 문제로 생각한다. 사실은 해상도 문제다.
“보고서 쓰기”는 일이 아니다. 일의 이름이다. 어떤 보고서인지, 누구를 위한 건지, 몇 페이지인지가 정해지기 전까지 그건 안개다. 안개를 마주하면 뇌는 자동으로 다른 일을 찾는다. 인스타그램이든 설거지든.
인지적 부하는 작업의 무게에서 오지 않는다. 윤곽이 없는 데서 온다. 무거워서 못 드는 게 아니라,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서 못 드는 거다.
AI는 비서가 아니라 도마다
해상도는 결심으로 안 올라간다. 도구가 올린다.
내가 자주 쓰는 프롬프트는 단순하다.
“이 일을 10분 안에 시작할 수 있게 쪼개줘.” “이 작업의 첫 번째 행동만 정해줘.” “내가 지금 막막해하는 이유를 질문으로 정리해줘.”
대단한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첫 시작점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던지는 순간, 작업의 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모호함이 줄어든다. 첫 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5단계가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1단계가 손에 잡히는지가 중요하다.
이때 AI는 비서도 작가도 아니다. 도마다. 잡기 어려운 덩어리를 올려놓고 칼이 들어갈 자리를 만드는 도구. 손질대 위에서는 토막난 재료가 나올 뿐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남이 보면 우스워도, 시동만 걸리면 됐다
“그걸 굳이 AI한테 시켜?”
5분이면 정리할 일을 AI에게 먼저 던지는 경우가 있다. 효율로만 따지면 손해다. 그런데 5분 안에 시작이 안 되니까 던지는 거다.
이건 결과 효율이 아니라 시동 장치 효율이다. 차가 굴러간 뒤에는 처음 1초의 시동이 키 돌리기였는지 푸시버튼이었는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자신만 알면 되는 시동 의식이 있다. 남이 보기엔 비효율이라도, 자기에게 작동하면 그게 정답이다.
생산성 격언은 보통 이걸 빼놓고 말한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라는 말은 맞다. 다만 그 전에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안 보이는 일은 먼저 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결국 미루기와의 싸움은 의지력의 싸움이 아니다. 일의 해상도의 싸움이다.
개구리를 먹는 건 다음 문제다. 일단 도마부터 꺼내라. 도마 위에 올라간 개구리는 이미 절반쯤 먹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