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이 길수록 못 시킨다
요즘은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무엇이 중요한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건 정보가 아니라 방향이다.
선택지가 하나면 고민이 사라진다
30년 전 한국에서 가난한 집 아이의 진로는 단순했다. 공부 하나였다.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지, 행복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펴면 그게 정답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인플루언서, 유튜버, 작가, 1인 창업가. 한 손에 다 꼽을 수 없다. 게다가 그 안에서 또 갈라진다. 개발자라고 해도 백엔드인지 프론트엔드인지, 스타트업인지 대기업인지, 외주인지 인하우스인지. 메뉴판이 다섯 장짜리가 됐다.
재밌는 건,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사람들이 더 행동하는 게 아니라 더 멈춰 섰다는 거다. 짜장면 아니면 짬뽕일 땐 1초였다. 다섯 장짜리 메뉴판 앞에선 10분을 고민하다 결국 시키지도 못하고 가게를 나온다. 인생의 결정도 똑같다.
정보 부족이 아니라 방향 부재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안다. 유튜브엔 모든 분야의 입문 강의가 있다. 책 한 권 사지 않아도 위키피디아와 블로그 글로 박사 수준의 정보를 끌어올 수 있다. 그런데 왜 더 막막한가.
핵심은 이거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른다. 지도가 100장 있어도 목적지를 모르면 다 무용지물이다. 어떤 지도를 펴야 할지조차 못 정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보를 더 모으면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강의를 더 듣고, 책을 더 읽고, 분석 영상을 더 본다. 그러나 추가되는 정보는 갈림길의 수만 늘릴 뿐이다. 어디로 갈지는 정보가 알려주지 않는다. 방향을 정하는 건 다른 종류의 질문에서만 나온다.
되고 싶은 모습이 나침반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정답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영원히 답이 안 나온다. 답이 없는 질문에 매달리면 행동이 멈춘다.
대부분은 모르지만, 질문을 바꾸면 답은 생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다. 이 질문은 답이 있다. 정답이 아니라 나의 답이라서 그렇다.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내가 정의하면 그게 기준이 된다.
기준이 생기면 행동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 일이 그 모습에 가까워지게 하는가, 멀어지게 하는가. 단지 그것만 물으면 된다. 자격증을 딸지 말지, 이직을 할지 말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지 말지. 절대적 답은 없지만, 그 모습에 비춰보면 답이 보인다.
정의가 없으면 모든 게 다 그럴듯해 보인다. 다 좋아 보이고 다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다 시도해보다 어디에도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끝난다. 혹은 시도조차 못 하고 강의만 100개 결제한다.
메뉴판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메뉴판은 앞으로도 계속 길어진다. 그건 시대의 방향이다.
자기 입맛을 먼저 정하라는 거다. 무엇을 먹을지 모르겠다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다. 그 답이 메뉴판을 좁혀준다. 결국 정보보다 정의가, 정의보다 되고 싶은 모습이 먼저다.